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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김낙원은 밥 먹듯이 하던 외근도 끊지 못하고 잠시 서 밖으로 나왔다. 청장이 움직이는데 경정이 뭐라고 안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오전에 있었던 경찰의 날 기념식에는 대통령도 왔었더랜다. 그래서 김낙원은 언젠가 입고는 어딘가에 처박아뒀던 정복을 꺼내 입고, 멋들어지게 경례를 한 뒤, 서울지방경찰청의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의 날과 상관없는 ‘서울 경찰 한마음 비빔밥 비비기’ 행사에 잠시 얼굴을 비췄다.

 

 김낙원은 딱 맞는 정복을 입고 밥을 비비는 서 경위와 홍 반장의 뒤에서 병풍처럼 서 있다가 담배가 절실해지는 순간에 10미터에 달하는 김밥을 만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뒤, 서 경위에게 간다는 말을 전하며 자리를 떴다.

 

 머릿수라도 채워달라는 말이 저 뒤에서 들렸다. 전날 오전에 고시원 방화 살인으로 난리가 난 통에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인원과 사건 때문에 얼굴을 비추는 인원이 나뉘어져 서가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김낙원은 행사 구역을 벗어나 담배를 입에 물며 홍 반장이 밥을 비벼야 한다며 혹시 겉옷을 벗어 놓은 사이에 잃어버릴까 걱정했던 수갑을 주머니에 대충 찔러넣었다. 1000인분의 비빔밥을 나눠주고 있는지 비비고 있는지 하고 있는 홍 반장에게 ‘이제 나는 가니까 여기 수갑 가져가라’며 홍 반장 뒤를 쫓아다니기에는 김낙원의 직급이 너무 높았다.

 

 ‘쯧, 그러고 보니 감히 날 락커로 써?’

 

 그래도 김낙원은 홍 반장의 수갑을 차문 밖으로 던져버리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부드럽게 차를 몰아 서에서 멀어질 뿐이었다. 오늘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쁘다는 화요일이다. 꽃집보다도 적응을 못하는 박목화의 어벙하고도 무뚝뚝한 얼굴을 보러 가기에 딱 좋은 날이란 뜻이었다. 김낙원은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몰았다. 



 

 그러나 경찰 정복까지 갈아입고 백억 카페로 들어갔던 김낙원은, 결과적으로 카페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화요일이라 사람이 너무 붐벼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낙원에게 알바생들이 괘씸한 눈초리를 해댔고, 박목화마저도 “집에서 기다려라”고 말하는 통에 김낙원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해야 했던 것이었다.

 

 김낙원은 토라진 7세 아이처럼 눈을 도륵 굴리더니 부루퉁한 얼굴로 카페를 나와 집으로 들어와서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괘씸한 놈들의 얼굴이 머릿속으로 재생되었다. 홍반장부터 아래에 있는 알바하는 네 명까지-박목화는 괜찮았다- 전부 재생한 김낙원은 다른 화풀이할 상대를 반짝 떠올리고는 삐뚜름하게 입술을 당겨 웃었다.

 

 김낙원은 휴대전화로 손을 뻗었다.

 

 최검이 그렇게 고치라고 했던 김낙원의 취미 생활이 다시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 * * 



 

 박목화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밝았다. 사람 사는 집다운 태가 나서 박목화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다 보고 있던 김낙원이 눈썹을 까닥이더니 전혀 기분 상하지 않은, 오히려 신나 보이는 얼굴로 박목화에게 말했다.

 

 “아주 사장을 쫓아내고 웃음이 나와?”

 

 “……손님이 많으니까.”

 

 “나도 손님이었어.”

 

 “너는…….”

 

 “할 일 없이 너 기다리고 있는 거니까 쫓아내도 된다 이거냐?”

 

 박목화는 놀랐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김낙원에게 ‘집에서 기다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전에 놈을 기다리며 꽃집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부터, 놈에게 직접 자신을 기다리라고 말하기까지, 겨우 일 년 상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사이에 자신은 집을 옮기고, 일자리까지도 옮겼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녀석이 자신을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나 그런 박목화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낙원은 벌써 오늘이 경찰의 날인 건 아냐는 둥, 무슨 행사를 뛰고 정복을 입고, 홍반장이 어땠는데 카페 놈들도 똑같다는 둥,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언제나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것이 어린 티를 내는 것 같아서 박목화가 묵묵히 들어주고 있자 김낙원이 눈을 반짝였다.

 

 사실 김낙원은 박목화가 없을 때 재밌는 일을 떠올렸다. 인맥관리 전화를 돌리고 있던 와중에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정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었다. 아직도 경찰대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동기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낙원은 ‘박목화가 경찰을 했어도 잘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경대 준비를 한다는 동기의 ‘어떻게 하면 경찰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김낙원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경찰 제복을 입은 박목화가 머릿속에서 그려진 것이다. 놈의 날카로운 눈은 군인이 더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지만 경찰 근무복도 제법 어울리는 것 같았다. 김낙원은 자신의 정복에 다가가 슬쩍 정복의 팔 부분을 매만졌다.

 

 ‘끊어야겠다.’

 

 [뭐? 낙원아, 낙원아!]

 

 ‘……나도 미쳤군.’

 

 이딴 플레이를 하는 놈들은 전부 족쳐버리고 싶지만, 김낙원은 경찰 정복을 입고 번듯하게 서 있는 박목화가 한 번쯤, 보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김낙원은 지금 박목화가 자신의 반짝이는 눈빛에 못 이겨 소파 가까이로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막 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목화는 이어지는 김낙원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 정복 입어볼래?”

 

 “…….”

 

 박목화는 김낙원이 드디어 미친 게 아닌가 걱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소년원에도 가보고 감방에도 가봤던 전직 조폭 행동대장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경찰 정복을 입어보고 싶겠는가…….

 

 하지만 박목화는 지난 2년간 김낙원에게는 상식이 잘 안 통한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그래도 경찰 옷을 입고 싶지는 않아서, 박목화가 거절의 말을 꺼내려는데 김낙원이 먼저 선수를 쳤다.

 

 “나 쫓아낸 게 미안하지도 않냐?!”

 

 “……아니, 그건-.”

 

 “내가 너 기다리는 거 뻔히 아니까 너도 나 쫓아낸 거잖아,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그게 애인한테 할 취급이냐? 라고 일갈하는 김낙원은 정말 억울해 보였다. 언제나 똘망하던 눈이 전등에 비쳐 울먹이는 것 같은 눈처럼 보이게 되었을 때, 박목화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어쩔 수 없이 허락을 내리는 박목화의 사인임을 아는 김낙원이 얼른 밝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경찰 정복과 모자를 들고나왔다.

 

 “입고 와 봐.”

 

 박목화는 최대한 느릿하게 그것을 받아 들고,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냥 한 번 입어주고 김낙원의 쫑알거림을 덜 듣자는 심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단추가, 안 잠기는데.”

 

 박목화는 모자를 들고, 경찰 정복 가슴께의 단추 하나를 푼 채 거실로 나왔다. 김낙원의 바지를 입는 것은 무리라 어차피 똑같은 검은 색이겠다, 바지와 셔츠는 그대로 입고 정복의 겉옷과 모자만을 대충 걸치고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김낙원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

 

 김낙원은 경찰이 꿈인 7살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박목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커서 경찰이 될 거예요!’라고 외치고 다니던 아이가 경찰을 실제로 보면 딱 저런 얼굴일 것 같았다.

 

 그 얼굴에 도리어 민망해진 박목화가 머쓱한 얼굴로 김낙원의 시선을 피하자 김낙원이 눈을 깜빡이더니 “모자도 써 봐” 하고 주문했다.

 

 박목화는 머뭇거리며 모자를 머리에 얹었다. 김낙원은 그 모습을 보고는 씩 웃으며 박목화의 모자를 똑바로 해주었다.

 

 가슴 쪽이 꽉 끼는 듯 위쪽이 벌어져서 정복을 입은 경찰 같아 보이기보다는 이제 경찰에서 물러난 사람이 젊은 시절에 입었던 정복을 다시 꺼내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퇴역한 군인이 군복을 입으면 헐렁해지듯이, 보통 경찰들은 퇴직하면 배가 나와 아래쪽 단추가 잘 안 잠기곤 했다. 놈은 위쪽 단추가 안 잠기는 거지만, 뭐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푸하하!”

 

 김낙원은 참을 수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웃으며 한 생각은 광우 새끼보다 박목화를 먼저 만나서 경대로 끌고 갔어야 하는 건데, 였다.

 

 “경찰 하면 잘했을 텐데.”

 

 한참 웃던 김낙원이 그렇게 말하자 박목화가 모자를 벗으며 어색하게 말했다.

 

 “옷만 입는다고 경찰이 되나.”

 

 김낙원이 눈꼬리를 가늘게 늘리며 눈썹을 까딱였다.

 

 “뭐, 기분이라도 내는 거지.”

 

 그렇게 말한 김낙원은 잠시 박목화를 바라보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바지를 뒤적여 홍반장이 맡겨둔 수갑을 가져왔다.

 

 “자. 이거 들고 있으면 좀 경찰 같냐?”

 

 박목화는 얼떨결에 수갑을 받아 들고 김낙원을 바라보았다. 놈은 정말 자신을 경찰로 만들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얼굴에 즐거움 말고도 뿌듯함이 보여서 박목화는 피식 웃고 말았다.

 

 “너를 체포하면 되는 거냐.”

 

 김낙원이 입을 살짝 벌렸다. 박목화의 말은 묘하게 들리는 구석이 있었다. 경찰이 아닌 이가 경찰 정복을 입고, 수갑을 들고 하는 말이 ‘널 체포하겠다’라니. 물론 박목화가 들고 있는 건 플레이용 얇은 수갑이 아니라 진짜 형사들이 쓰는 범인 체포용 수갑이었지만, 그래도 좀 불순하게 들린달까.

 

 김낙원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낯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목화의 얼굴이 우중충해진다.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냐는 얼굴이었다.

 

 김낙원이 슬쩍 한 발짝 박목화에게 다가갔다. 착하게도 박목화는 뒤로 물러서는 대신 김낙원을 주시하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김낙원이 두 발짝 가까워져서, 손을 뻗으면 박목화의 뺨에 닿아 입을 맞출 수도 있을 것 같은 거리에서, 드디어 박목화가 김낙원의 의도를 알아챘다.

 

 박목화가 눈을 꿈뻑인다. 주저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김낙원은 물러서겠다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뻗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박목화의 명치께에서 힘겹게 박목화의 흉부를 동여매고 있던 두 번째 단추가 팅- 하고 날아갔다.

 

 정교한 조각이 되어 있는 금색 단추가 김낙원의 허벅지를 맞추고 바닥을 뒹굴었다.

 

 분위기는 이미 키스나 하고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짧은 침묵이 거실을 감돌았다. 김낙원은 이 분위기를 잡을 때마다 뭐든지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방해하는 것들을 기억해내고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런 분위기일 때만 이러냐고!

 

 김낙원이 억울한 얼굴로 저 멀리 날아간 단추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박목화가 갑자기 피식 웃는 게 아닌가.

 

 “하하.”

 

 미안하다. 하고 덧붙이는 박목화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 있다. 김낙원은 부루퉁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며 생각했다? 웃기냐? ……웃기면 됐지. 후우, 내 신세야.

 

 “달아주마.”

 

 “새것처럼 달아줘.”

 

 “알았다.”

 

 박목화의 얼굴은 정말로 예상치 못한 일에 즐거워하는 얼굴이었다. 경찰이 민간인을 웃기다니 원래라면 명예롭진 않은 일이지만, 경찰의 날이라고 비빔밥 비비고 김밥이나 말고 있는 놈들도 있는데 이것 정도면 양반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느질도 할 줄 아냐?”

 

 박목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에서 해. 나도 보게.”

 

 “알았다.”

 

 박목화는 그렇게 말하고는 집안 어딘가에 있을 반짇고리를 찾으러 나섰다. 김낙원은 그사이 소파에 앉아 박목화가 경찰 정복을 벗고 집을 돌아다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롭고 즐거운 경찰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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