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 구성에 ‘익숙하다’란 단어가 어울리게 될지 몰랐던 시간을 지나와, 김낙원과 박목화의 지인들로 한데 뭉쳐진 그림이 꽤 그럴싸한 때가 백억 카페의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늘 경쾌한 인사와 함께 시커먼 콩물을 살 겸 들리는 김원일과 똘마니들, 동생더러 보고 싶단 말을 못 해서 굳이 반찬을 핑계 삼아 들르는 김정애와 상당한 값이 나가는 꽃다발과 화분을 주문하는 김낙원의 지인들이 카페의 문턱을 겹쳐 밟으며 드나들었다.

  모두가 때가 탄 손은 등 뒤에 숨기고, 비교적 깨끗한 손으로 악수해가며 조화랄 것을 키워갔다.

 

  그래. 인간은 표면적인 것들만 전시해가며 살 때가 가장 아름답지.

 

  금빛의 크레마로 출렁이는, 녀석이 힘껏 뽑은 에스프레소. 입안을 커피 맛으로 가미한 김낙원이 제 혀만큼이나 느긋한 곰손 사장의 이름을 불렀다.

 

  “박목화.”

  “커피 리필은 안 된다.”

  “아니, 야.”

 

  내가 지금 커피 한 잔 더 먹겠다고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줄 아나, 저놈은 사람을 뭐로 보는 거야.

 

  “하…. 저기 저 녀석들, 손님치고 너무 시끄러운 것 아닌가?”

  “… ….”

  “이 카페 사장은 민원이 접수돼도 딱히 움직이진 않나 본데.”

  “네가 어떻게 손님이냐.”

  “커피값 내고 앉으면 손님이지, 손님이 따로 있나? 어? 뭐, 나는 손놈이냐? 이젠 내 말도 다 무시하고. 제법이야 박목화?”

 

  김낙원은 곡식이 익어 고개를 푹 숙인 계절에도 제 고개는 숙일 줄 몰랐다. ‘뭘 보고 배워선. 쯧!’ 하며 2절에 3절까지 더한 꿍얼거림은 피식대는 그의 입매에 시원한 가을 하늘처럼 내걸렸다.

 

  사람이 익을수록 머리를 떨구어야 할 텐데…. 어떻게 된 성질머리는 고마움은 당연지사, 당연한 건 으레 지속해야 했다. 풍요로운 명화 속에서도 어느 한 편에 고얀 인상의 사람이 꼭 그려져 있는 것처럼, 이 평화로운 카페 마당의 한구석에서 굳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한 폭의 그림에 오점을 자처한 자가 있었다. 그게 김낙원이었다.

 

  “거기, 왜들 그렇게 모여 있나. 어? 바람을 손님으로 맞을 생각인가 보지. 어? 그리고 니들이 사장이야? 너희 사장 허리가 이삭줍기 명화인 양 휘는 게 안 보이나? 어?!”

  “죄, 죄송…”

  “…그만해라. 내가 해도 된다. 직원들도 쉬어야 않겠나.”

 

  조금 전, 마당에 배달 된 커피 포대를 둘러메고 옮기기 시작한 박목화가 ‘녀석이 왜 또 성질이지.’ 하는 표정으로 묘하게 김낙원을 바라봤다. 근처 직장인들로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모두 안 바쁠 틈이 없는 점심시간 러쉬가 이제 막 끝난 차였다. 한숨 돌리며 담소 중인 직원들에게 굳이 화풀이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저 이야기하고… 일, 합시다.”

  “네! 사장님!”

 

  김낙원 보기에 지긋지긋한 얼굴들이 일동 차렷 자세를 취하더니 박목화에게 꾸벅- 인사를 해 보인다. 등 뒤로 숨긴 손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유독 에코의 팔이 들썩거리는 듯했다.

 

  저놈들까지 박목화랑 형, 동생 할 작정인가? 니들이 종일 일해준다고 박목화의 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나?

 

  박목화의 너른 마음이 단 한 사람만을 서운하게 함과 동시에 문제의 카페 직원들과 원을 그리며 담화 중이었던 택배 조끼의 사내가 말을 얹었다.

 

  “아~ 거참. 경찰 양반. 뭐 찌끔만 더 떠들어싸면 잡아가겠소잉? 뭣이 그래 또 심사를 뒤틀리게 했는지 몰라도, 땡땡이 중인 민중의 지팡이가~! 그라믄 안 되제.”

  “안 되긴 뭐가 안 되나, 어? 막말로 그 발아래 잔디며, 땅이며, 손에든 커피까지 다 내 재산인데. 터주가 시끄러운 걸 시끄럽다고도 못하나?

  “…맞제.”

  “…그라제.”

  “…원일 행님 말이 틀린 게 없지라.”

  “니들은 멀뚱히 서서 뭘 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어!!”

 

  다리 꼰 폼으로 멋들어지게 앉아있던 갈색 머리의 사내가 결국 잔소리 폭격을 시작하며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목표물이 자신인 것을 잘 아는 김원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형님~’ 하고는 박목화 어깨에 걸쳐있던 포대를 보다 낮은 어깨로 당겨 받으며, 유리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냅다 굴러 들어가는 폼이 이 바닥에서 한두 번 굴러본 짱돌의 폼이 아니었다.

 

  불시에 포대를 뺏긴 박목화와 어쩐지 그 뒤로 숨은 듯 일렬로 사라진 직원들. 옹골찬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시선 둘 곳 없는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우뚝 선 사내들 중심으로 김낙원의 구둣발이 멈춰 섰다.

 

  “곱상하지도 않은 성인 남자 여럿이서 위험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서 있는 이유 좀 들어볼까? 어?”

 

  사실을 직시하자면 이 카페 내에서 화를 내는 사람은 김낙원이 유일했다.

 

  “별 시답잖은 이유라면 이쪽은 바 너머로, 또 이쪽은 카페 대문 너머로 걷어차 쫓아낼 테니 그리 알라고. 이런 그림 탓에 손님이 끊기면 니들이 책임지고 서서 기도 노릇 할래?!”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성화인 사람은 김낙원이 유일했다.

  한바탕 윽박지르고 속이 좀 시원한지, 정장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선 김낙원이다. 말끝의 침묵은 모두의 시선이 한 남자로 몰리게 만들었다. 한낮의 햇살… 뻥 뚫린 마당으로 쏟아지는 빛… 계절에 무르익은 풀과 꽃과 나무로, 카페는 마치 연출된 세트장 같았다. 그 근사한 마당에 비스듬히 선 김낙원의 짝다리마저 맵시 좋다는 생각을 모두가 동시에 했다. 미운 짓을 해도 미모로 무마하니 원…

  일제히 아름다움이란 공격을 받는 사이, 덩어리째 우중충해진 분위기 속에 한 사람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군중 속에 두면 고독해지고, 보편이라 하면 그 우주에 관계되지 않으며, 남들 다 하는 생각을 혼자 하지 않는 사람.

 

  “…나도 궁금하니 이야기해 봐라.”

  “야 박목,”

  “김원일.”

  “예~ 형님~!”

  “아씨, 내 말을 끊고 김원일을 불러?”

 

  늘 박목화만은 김낙원이 판쳐놓은 무법을 바로 잡고자 궁리했다. 사회에선 김낙원 그 자체만으로 법이 될 수 있으나, 박목화의 영역 안에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리문 너머에서 상황을 살피던 김원일이 호명 한 번에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러곤 대답을 요하는 조용한 두 눈에, 머리칼이 짧은 뒤통수를 뭉뚝한 손끝으로 버석버석 긁어대곤 운을 뗐다.

 

  “그것이 말이지라…”

  “뭔데.”

  “경찰 양반. 저- 짝에 배추가 윽~쑤로 많은 곳 알지라.”

  “고랭지 아냐. 지금 나랑 장난하냐? 네 놈이 문화센터에서 한국 지리라도 배우나 본데.”

  “아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는 봐야제. 그것이… 목화 형님. 구동범이 아시지예? 대청 무역 있던 놈 말입니다. 고놈이 요 최근에 손을 씻고 농사를 한다지 뭡니까.”

  “안다.”

  “그라서 자가, 먼 미래에 형님 사업에 도움이 될랑가 싶어 밭 한 마지기를 갖다 투자를 했다는 거 아닙니까.”

  “…너,”

  “빙다리 핫바지는 아니지 말입니다. 정정당당하게 계약서에 사인을 해다가~!!”

  “새끼야, 요점만 간단히. 요점만.”

 

  김원일과 박목화의 투맨쇼를 번갈아 가며 지켜보던 김낙원이 결국 구두 굽으로-박목화의 백억 중 일부일-잔디를 지르밟았다. 악덕 감독의 강력한 컷! 소리에 두 사람 편으로 슬금슬금 기울던 직원 및 똘마니 일동이 번쩍! 바로 섰다.

 

  “아… 거, 한창 달아오를라 카는디!”

  “그래서 네 놈이 사기라도 당했다는 거냐? 그걸 말하고 싶나?”

  “크… 거시기 아쉽게도, 이미 넉 달째 정상 가동 중이구먼. 자자, 그래서 문제는 한 달에 한 번 현장에 나가볼 웃 사람이 필요헌디, 나가 아는 사람 중에 믿고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거여.”

  “원일이 너는 일이 있는 거냐.”

  “하필 그날은 가드 슬 곳이 따로 있지 말입니다.”

 

  에둘러 말하는 꼴이 뒷세계 문제인 것 같았다. 아무리 손을 씻었다 한들 자신과 관계된 문제가 발발하게 되면 여지없이 끌려가고야 마는 게 그 세계 생리였다. 완전한 일반인으로 돌아선 박목화와 달리, 놈들은 경계선에 있으니 대충 그 말뜻을 김낙원만 알아들었다.

 

  “거기- 일, 이, 삼, 사. 형님 일에 형제애 좀 발휘해보지 그래.”

  “…에휴. 거 양반 인생만 사람 인생이지.”

  “니들이 바쁠 게 뭐가 있어.”

  “저, 저… 방금 사람이 사람 말을 했는디…. 아무튼! 여타 부탁할 곳이 없어서 이쪽 카페 선생님들께 여쭙고 있었다 이거여. 인자 좀 덜 궁금한가?”

  “직원들이 거길 갈 시간이 있겠나? 하여간에 네 놈들만 왔다 하면 평화로운 이곳이 어수선해진단 말이다. 가라, 가!”

 

  김낙원을 두고 설파해 봤자다. 득이 되지 않으니 납득이라곤 하지 않는 그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더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카페 대문 밖으로 걷어차려는 그때,

 

  “주소가 어떻게 되나.”

  “…박목화.”

  “형님!”

 

  늘 뜻밖의 해결을 자처하는 박목화가 기어이 나서고 만 것이다.

 

  내가 이 꼴을 안 보려고 얼른 내쫓으려 했건만!

 

  다시금 산란해지는 분위기에 카페 직원들이 일제히 ‘흠흠’, ‘큼!’ 소리를 내며, 널브러져 있던 원두 포대를 옮기는 노선으로 갈아타 사라지고 말았다. 사장 형이 거드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안 봐도 비디오다. 이제 저 경찰 사장이 애처로운 고양이 눈망울을 하고서 안 된다는 반박을 따박따박 늘어놓을 것이다.

 

  “카페에는 직원들이 있을 거니, 내가 다녀오면 된다.”

  “너는 카페 직원 아니냐? 아니 너, 너는 사장이잖아, 박목화.”

  “그러는 너도 사장이다. 네가 주말 일을 좀 봐 줄 수 있겠나.”

  “네가 없는 카페엘 내가 왜 나오냐?!”

 

  거… 참. 사랑 고백 한번 절절허네.

 

  홍옥처럼 붉어진 김낙원의 얼굴을 보고도 못 본 척하며 김원일은 사내새끼가 참, 유난이다- 생각했다. 카페 출근 결사반대의 외침을 들은 박목화가 ‘너는…’ 하며, 막막한 말문을 잇지 못하고 거울 보듯 김낙원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저것이 사랑인지, 우리 목화 형님만 보면 맞는디 저짝은 미친인지.

 

  구름 한 결이 흘러 지나간 자리에 다시금 태양 빛이 내리쬔다. 곧고 강한 직사광선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김낙원이 박목화 면전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습관인 듯 이마 위를 드리우는 손이, 그 손에 자리한 약지 반지가 김원일 눈알을 반사광으로 후벼 팠다.

 

  …이런 썩을.

 

  “그렇게 우리 형님이 좋으면, 경찰 양반도 같이 다녀오지 그라요?”

  “네 놈이 시그니엘 서울의 디너를 갚을 셈이지?!”

  “…시끄럽네니, 시그니엘이니 뭐니 모르겠고. 감사하게도 목화 형님이 도와주신다 하니께? 나는 형님께 주소나 문자로 쏴드리겠습니다요.”

  “야!!!”

  “김낙원, 진정해라. 원일아, 거긴 가서 뭘 하면 되는 거냐.”

  “하는 게 있겠습니까요. 트럭 타고 농장 한 바퀴 돌고 나면 잘 지어진 별장에서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팔자 좋게 늘어져 있으면 되는구먼요. 구동범이가 한 번씩 농장주가 출타를 안 해주믄 기강이, 요 기강이 무너진다하지 않습니까.”

  “제 구역은 확실히 돌봐야지. 맞는 말이다.”

  “맞긴 뭐가 맞아. 목화, 이젠 일말의 통증조차 남지 않았다 이거냐? 내가 내 입으로 이런 말까지 해야겠나?”

 

  김낙원의 칭얼거림이 버거운지 햇빛도 시선을 돌려주자, 그늘막을 거둬낸 손이 희고 긴 흉터가 자리한 투박한 손등 위를 포갰다. 덩달아 김원일은 못 보겠다 싶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크게 두어 번 가로저어 털어낸 김원일이 기왕 이렇게 된 거, 경찰 양반이 혹할 방향으로 마음을 돌려보고자 입을 털어대기 시작했다.

 

  “글쎄, 그 쎄이티브이씨? 인가, 있잖소. 배우 양반들이 산촌 어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캠핑도 허고, 고기도 구워 먹고 하는 쇼 프로. 그거. 새끼삼식이?”

  “쯧, 산촌 세끼겠지. 그거 하나 못 외우나?”

  “크하하, 그려. 따악! 고거라니께. 이 답다-반 빌딩 숲을 벗어나서, 우리 형님 모셔다 자연에서 드라~이브 딱! 때 되면 바비큐 네 접시 홀딱! 거 별장 팬트리에 술이든 안줏거리든 가득 쌓아놨응께 아주 배 터질 때까지 드쇼! 집을 아주 그냥 개판으로 해두고 가도 내 뭐라 안 할 테니.”

  “… ….”

  “크흠, 커험!! 이 양반 대화가 잘 안되는구먼. 거, 귀 좀 대보소! 내가 형님 앞이라 말을 좀 가려서 하려니께.”

  “…이게,”

  “아, 언능!!”

 

  순간적으로 동요한 김낙원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은 김원일이 잠시 박목화를 등지고 외간 사내놈의 어깨에 팔을 빙- 둘렀다. 자신도 원치 않았으나, 매일 여행을 부르짖는 김낙원인 것을 잘 알기에 막판으로다가 밀어붙일 요량이었다.

 

  “아씨, 어깨에-”

  “형님이 정처 없이 떠나자면 떠나시는 분이요?”

  “… ….”

  “주말이라고 쉬는 사람이냔 말입니다. 지가 우리 형님 하루 반납을 해준다 하는디 고것을 못 먹어서야. 츠-”

 

  그 이상은 인간 사이에서 신을 자처하신 귀한 김낙원 님 놈 분의 선택이었다. 김원일은 결백을 주장하듯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김낙원으로부터 쭉 물러나 박목화 곁에 섰다.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박목화의 그늘 아래 선 김원일은 약을 살살 올리듯 꿀렁대는 입매로 웃음을 참아 보일 뿐이었다.

 

  뭐? ‘우리’, ‘형님’을 하루 ‘반납’…? 저 새끼가, 박목화가 누구 것인지 몰라서 저러나? 이참에 시그니엘 막대과자 데이 기념 디너 코스가 아니라, 김원일의 고랭지 밭을 밀어버리고 와서 누가 누구 건지 똑똑히 알게 해줘야겠어.

 

  김원일의 잔꾀에 보기 좋게 넘어간 김낙원도 마저 박목화 편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여전히 삐딱한 자세였지만 최대한 꼴 사나워 보이지 않기 위해 떨리는 입꼬리를 찍어 올리며 아량 넓은 척을 해 보였다.

 

  “너… 내가 그날이 마침 농민의 날이니까, 어? 그리고 박목화가 원한다고 하니까 네 형님 운전기사를 자처하는 거다. 알겠나?

  “운전은 내가 해도 된다. 너는 역시 서울에 남아…”

  “목화.”

  “…마음대로 해라.”

  “하, 박목화. 그럼 하나만 묻지. 정말 이 나라 최고 반열 호텔의 최고급 디너를 날리고서, 배추를 끌어안고 자야 할지도 모를 산지에 처박히는 걸 선뜻 기분 좋게 자처한다는 거냐?”

  “그렇다.”

  “어째서…!”

  “너도 같이 봤지 않나. 일전에 티브이에서…. 네가 집을 나가면 개고생이라 했지만, 집을 나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경험도 있는 거다. 그리고…”

 

  어느새 민둥산과 까까머리 군단도 모두 사라진 마당에서 박목화는 잠시 시선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듯, 답지 않게 굴었다. 뭐든 척척- 된다, 안 된다, 해라, 하지마라 하는 놈이, 별것 없는 기억 속에서 무엇을 회상하는 거지? 늘어진 테이프처럼 ‘그리고’의 말꼬리만 죽- 늘려대는 박목화의 입술만 유심히 바라보던 김낙원의 목도 함께 늘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면 뭐를 닮는디, 이런 걸 닮는 거면 나는 안 하고 잡다.

  둘의 행태에 혀를 내두른 김원일도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이 태풍이라도 되는 듯, 주변이 죄 쓸려가고 없는 것처럼 휑했다. 지속되던 그늘처럼 어둑히 제 속마음을 홀로 보던 박목화는 구름을 홀가분히 밀어낸 무한한 넓은 파랑처럼 일순 미소를 지었다. 운을 뗄 줄 알았던 입술이 호선을 그리는 것을 보던 김낙원의 뺨도 다시금 햇살이 간지럽혀댔다.

 

  “네 별장에 다녀온 때가 생각났다. 그런 거라면, 가 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낙원 넌, 여전히 별로냐.”

  “…가, 야지. 목화. 나는 너, 네가 없는… 카페는 출근할 생각이 없다는 데도… ….”

 

  곱고 긴 손가락을 굽혀 제 뺨을 긁어대던 김낙원이 빠르게 품속의 휴대전화를 꺼내 예약 취소 창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박목화. 주말에 먼 길 가는데, 도시락이라도 싸서 갈까? 너 거기까지 운전만 몇 시간인 줄 아냐? 강원도가 은근 낭만이 있어. 1000m 되는 고도에 가본 적이나 있나? 너 거기 뭐 묻으러만 가봤지, 가서 하늘 한번 쳐다본 적은 있어? 하긴, 구름이 발보다 아래에 있는데 별과 가까운 게 신기하겠어. 고기는 몇 근 끊는 게 좋겠나, 어?”

  “…네 마음대로 해라.”

 

  취소 사유는 ‘해당 시설보다 만족스러운 상품 이용을 위해’가 체크된 채였다.

 

 

부쟌2.PNG
bottom of page